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네팔에는 히말라야를 비롯한 많은 산들이 있습니다. 8,000m 넘는 산이 10..7,000m 넘는 산이 250, 6,000m 넘는 산들은 헤아릴 수도 없어서 동네 길로 치는 나라가 네팔입니다. 그래서 네팔 선교사였던 저에게 있어서 이란, 어떤 관념이나 환상이 아닌, 넘어야 할 실제적인 문제였고, 실제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시편 121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네팔 선교사역을 하면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들기조차 싫었습니다. 교회를 순방하면서, 산만 보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참으로 많은 산들을 넘어보았습니다. 그런데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산들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또 신앙여정에도 넘어야 할 많은 산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허락된 상황이 있고, 허락된 도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들에게 많은 산들을 두시고 우리로 그 산들을 넘게 하시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추적해 오는 바로의 군대, 앞에 넘실거리는 홍해를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 번도 걸어보지 않는 인생이라는 광야 길에 서 있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어느 곳으로 행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은 수 많은 산들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의 친밀함 속으로 인도해 들이시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인생과 신앙의 여정에 넘어야 할 산을 두신 또 하나의 이유는 믿음의 성숙함’, ‘영적인 성숙함을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왔고 나름 순종과 헌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은 백세에 나은 아들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 번제로 드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을 때에, 주님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고 그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세는 사십일을 전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시내산을 오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 수많은 거짓 진리와 거짓 선지자와 맞서서, 오직 여호와 한 분 만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진리의 싸움을 싸웁니다. 우리들도 모리아 산도 오르고, 갈멜산도 오르고, 시내산도 올라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숙함, 영적인 성숙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산들을 허락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깊이 경험케 하시려는 은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움직일 때, 우리를 지키시며, 인도하시며, 보호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며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주님의 그 은혜와 섬세한 역사를 경험케 하심으로, 우리로 그 주님을 찬송하며 경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2014년 한 해를 보내고, 이제 또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2015년이라는 거대한 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두려움 없이 순종의 발걸음을 내 딛을 수 있는 이유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뉴송의 섬김이 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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