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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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단의 선배 목사님의 부고(訃告)를 듣게 되었습니다.
몇해전에 총회에 참석하면서 선배목사님이 암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 부고를 듣게 되면서 한참이나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과 교회들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유투브에 들어가서 최근 선배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8월 22일 마지막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많이 야위신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주님품으로 가셨지만 말씀은 남아있습니다. 뿌려진 말씀의 씨앗들이 주님의 때에 열매가 맺히기를 잠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월요일 저녁에는 또 다른 부고(訃告)를 듣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38세 되는 젊은 목회자였습니다. 사모님과 자녀 4명을 두고 주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저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목사님 친척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정해야 할 불편한 진실들이 있습니다.
그 진실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죽음 때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역설적인 진리는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때에 비로서 생명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죽음과 삶이 언제나 가까이 있는 종교입니다. 죽음 그 자체가 마지막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내 자아가 죽으면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이 주인되셔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시고,
죽음 뒤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하고 지혜로운 반응은
우리가 살아 숨을 쉬고 있을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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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 온누리교회를 담임하시는 이재훈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어느날 이재훈 목사님이 고 하용조 목사님에게 교역자들에 대해서
이런 저런 불평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셨다고 합니다.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을 해야 하는데 모든 사람과 다 마음이 맞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되어 동역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때 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 목사 나는 사람들의 장점만 보기로 했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 이재훈 목사님은 자신이 사람들의 단점만을 바라볼때 자신안에 불평과 불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로 함께 만나고, 사역하는 모든 사람들을 바라볼때 장점만 보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늘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을 볼때에도 언제나 한 마음을 갖기 쉽지 않은데,
어떤 특별한 부르심으로 모인 사람들끼리 한 마음이 된다는 일은 그냥 생각해보아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르셔서 제자가 된 12명 중에서도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가정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 그리고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을 갖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장점만 보기로 하는’ 마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22-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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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보여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기억해보면 옛날 학창시절에 시험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번의 시험의 결과로 대학입시의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학창시절 공부했던 모든 실력을  모아서 단 하루, 몇 시간 안에 실수없이 보여줘야 합니다.
짧은 시간 보여지는 것은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기 짧게는 3분, 5분 안에 작게는 4년동안 준비했던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니 초등학교나 중학교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던 그 모든 노력들을 모아서 단 몇분안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 올려서 보여주는 것이 실력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선택’의 결단은 실제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런 선택은 어느 순간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쌓여가면서 우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게 되고
하나님편에 서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일은
시간적으로는 그리 길지 않은 짧게 보여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시간 우리의 삶속에 익숙하게 연습되고 만들어져야만
선택의 기회가 올때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짧은 선택의 시간이지만, 그 선택은 지난날의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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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날, 수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았는데 너무 낯설었습니다.
수개월만에 처음으로 서늘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더딘 것 같아도 꾸준하게 지체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여름이 지난 해와 비교해볼때 더 더웠는지, 아니면 덜 더웠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제가 처음 경험해보는 LA의 여름은 말 그대로 타는듯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플로리다도 더운 곳이지만, 그 곳과는 또 다른 느낌의 여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9월의 첫날에 맞이하는 가을의 서늘함이었기 때문에 수요일 아침의 날씨는 더욱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나름대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빨리 습득하고, 사용해보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먼저 들어가서 직접 해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날씨를 비롯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에 대한 반응이 더디게 적응하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지난주 예배때 전에 섬기던 교회의 이름을 말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실은 그렇게 말한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생각하고 말하면 실수를 하지 않을텐데 대부분 기도의 내용에 집중하다보면, 제 입에 익숙해진 단어가 먼저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어머니가 저를 부르실때면 늘 형의 이름 부르고 다음에 저의 이름을 부르셨었는데
이제 벌써 제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운 여름날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타는 듯한 괴로움을 주는 여름과 같은 계절도 있지만, 이 계절 또한 때가 되면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추수의 때가 점점 다가오는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한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혀지게 되길 축복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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