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위해 살기와 하나님을 이용하며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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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에 금요일 새벽예배를 준비하면서 가만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먼저 말씀으로 저를 돌아보기 때문에 말씀으로 묵상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하면서 살고 있는가?”
이 문장을 쓰고나서 계속 머리속에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때에는 마치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기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인생의 주인이 여전히 ‘나’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존재이지만,
인생이 주인이 내 자신이 될때에는 하나님을 마치 ‘램프의 지니’와 같이 내가 말만하면 들어주는 존재로만 여기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할때만 찾는, 이기적인 나의 인생을 위해서 필요한 도구로서 기능적인 역할만을 하나님께 일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은
내가 헌신하고 기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토로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불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도, ‘하나님을 이용해서’ 살아도 우리는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봉사와 헌신을 하며 눈에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가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우리는 우리 안의 내면의 동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위해서 살아가는 뉴송의 가족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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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대면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면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을 쉽게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대학에서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대면수업보다 편리한 유익이 있지만,
대면 수업보다 온라인 수업이 질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대면수업을 통해서 얻는 만족감이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주변에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영향을 받는 것은 많은 시간 노출이 되면 될 수록 서로에게 영향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지를 돌아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가족입니다. 부모님과 형제입니다.
자라면서는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루의 일과 중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익숙해지고 영향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교회에서 만나 교제하게 되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사람을 통해서 성장하게 됩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만났던 분들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없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귀한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선하지 못한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사람인가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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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김득신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효종때 살았던 사람인데, 어렸을때 천연두를 심하게 앓게 되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 뇌손상을 입게 되었는지 이후로 심하게 아둔하게 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김득신은 10살때 되어서야 글을 깨우쳤고 그의 기억력은 뒤돌아서면 모두 잊어버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독려와 가르침으로 극복하여 20세에는 처음으로 글을 지었다고 합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벌써 관직에 오르고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자리에 앉아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머리가 좋지 않았던 김득신은 계속 과거를 치루지만, 번번히 낙방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던 그는 1662년(현종 3) 59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시 문과에 병과 19위로 급제했다고 합니다.
나이 60이 되어서야 관직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 나이엔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도 괜찮을 나이에 김득신은 관직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얼마간 관직에 있다가 이후에 사직하고 독서재인 취묵당(醉墨堂)을 짓고 시(詩)를 지으며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득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말해본다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득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이 되었던 것은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신뢰,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을 통해서 누구도 기대할 수 없었던 아들이 60세가 다 되어서 관직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늦었습니다. 분명히 오랜시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김득신은 마침내 오르고자 하였던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후대의 사람인 저는 20세가 되기전에 관직에 올랐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60세에 드디어 관직에 올랐던, 포기하지 않고 이뤄냈던 ‘김득신’이라는 사람은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귀하게 여겨주실까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이들을 기억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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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선배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새벽예배만 없어도 목회가 쉬울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에서 목회할때에 미국의 이민교회에는 새벽예배가 없다는 소문을 듣고서
막연하게 “그럼 목회 할만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사역을 해보니 제가 부임한 교회는 365일 새벽예배를 쉬지 않는 교회였고,
그곳에서 7년동안 부목사로 섬겼습니다. 모든 이민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삶의 한 부분으로 아침기도를 멈추지 않고( 혹은 멈추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편이해’ 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끄렇게 낭비한 시간, 이기지 못한 유혹들,
연약함과 낙담 속에서 일하는 것, 다른 사람과의 교제나 우리의 생각에서 나타나는 무질서와 방종은
종종 아침 기도의 소홀함에서 비롯됩니다”
 
하루의 시작에 주님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삶은 하루 온종일 영향을 줍니다.
그 날 방문할 곳, 그 날 만날 사람, 그 날 결정해야 할 일, 그날에 있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저는 보고 싶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인생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삶으로 변해가는지 보고 싶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께 맡길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인생을 어떻게 책임지시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뉴송의 가족들이 매일매일 하나님과 하루를 시작할때 주실 은혜의 열매들을 보기 원합니다.
아침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뉴송가족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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