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 01일 2022년 주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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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참석을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필라델피아를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탔던 시간은 5시간 25분이었습니다.
5시간 25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것입니다. 좁은 자리에 앉아서 꼼짝않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엘에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서부에서 동부로의 대륙을 횡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초에 차를 운전해서 대륙을 횡단하면서 보낸 7일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비행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같은 거리이지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시간을 몇배로 줄여서 도착하거나 혹은 몇배로 늦게 도착을 하게 됩니다.
저는 문뜩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었던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장정의 걸음으로는 일주일, 어르신들과 아이들 그리고 가축과 함께 한다면 11일 정도의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서 가나안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렇게 오랜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셨을까요?
신명기 8장 2절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보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면, 같은 거리의 목적지를 가는데 있어서 그 시간을 결정짓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의 목적지를 정해놓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고,
빨리 달려갈 수 없어서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원하는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잘 따라, 하나님의 때에 조금도 늦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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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부흥’이라는 찬양을 만드신 분은 고형원 선교사님이십니다.
그 ‘부흥’이라는 찬양이 발표된 앨범 안에는 “영문 밖으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처음 그 앨범이 나온 뒤에 “영문 밖으로”라는 찬양을 들었을때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그 찬양가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영문 밖으로 영문 밖으로 주님을 따라 나가자, 
온 세상 위해 죽으신 예수님 그 십자가 높이 들고서
온 세상 위해 죽으신 예수님 그 십자가 뒤를 따라서”
 
나중에서야 이 찬양이 히브리서 13장 13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영문 밖’으로 라는 의미는 ‘outside the camp’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먼저 나가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히브리서 말씀과 같이 ‘성문 안에’만 머무시면서 누리시기 위함 아니라 ‘성문 밖’으로 나가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리는 ‘inside the camp’가 아니라, ‘outside the camp’로 나아가야 할 줄로 압니다.
우리끼리 즐겁고 안전하게 지내는 ‘성문 안’ 머물러 있는 삶이 아니라 여전히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이 필요한 ‘성문 밖’으로 나아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품고서 ‘성문 밖으로’ 나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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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월요일에 치과치료를 해서인지 컨디션이 계속 안좋았습니다.
월요일 저녁에 세미나를 시작으로 화요일 저녁에 세미나 참석과 수요어머니 기도회 저녁에는 리더훈련
계속 진행중인 성경공부와 심방 그리고 매일 준비해야하는 새벽예배와 주일준비로 체력적으로 버겁다고 느껴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몸이 약해지면 생기는 “Cold Sore”가 입술 전체에 생겨서 사실 말을 하고 찬양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주에는 유독 갑자기 더워진 날씨가 한몫을 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내던 어느날 오후에 문자를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메세지였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생각하지 못했던 한마디의 격려는 누워서 쉬고 싶어했던 저로 하여금 다시 자리에 일어나 앉게 만들었습니다.
해야할 일을 생각할때 가지고 있던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욱 잘 감당해야 하는 사명의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른 이들로부터의 격려가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직원은 상사에게, 상사는 직원에게.
격려를 해주어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어떤 사람만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담은 한 마디의 격려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격려와 위로를 기다리기보다 바로 지금 내 옆에서 나와 함께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담은 한마디의 격려를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분명 우리 중에 누군가는 자신이 받은 격려를 통해서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지경에 있는 모든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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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부산에 있는 수영로 교회의 원로목사님이신 정필도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저는 부산에서 진행되는 세미나를 참석하는 중에 수영로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고 정필도 목사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일을 하신 참 귀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엎드리면 길이 보인다”는 말씀은 고 정필도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쉽게 이해되는 말이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서 살아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 말이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은 주님 앞에 엎드리는 일을 하기보다는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의 도움을 찾는 일을 먼저 하는 것 같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서 연락을 돌리는 일이나,
내가 이전에 경험했었던 것을 기억해내거나, 뭔가 당장에 손에 잡히는 방법을 통해서 해결을 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리고 이내 기대한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하고, 낙심하며,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향해 원망의 화살을 돌리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을 듣게 되었을 때에 그는 벽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이 기도한 모습을 ‘면벽기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다른 곳에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시간을 써야할 곳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그 길이 답답하게 보이기만 합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엎드려 주님의 얼굴을 구할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가야할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엎드리면 길이 보인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고, 열매맺게 되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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