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祈福)신앙과 축복(祝福)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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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깊이 생각했었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복(祈福)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에 한국교회를 보면서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기복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타적인 신앙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여전히 이기적인 신앙의 범주안에 머물면서 개인의 복 받기만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는 가운데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이 꼭 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섬기면 섬길 수록 더 많이 섬길 수 있도록 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하거나 ‘어렵고 힘들지만 헌신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하나님 복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믿는 큰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복’ 만을 받기 위해서 믿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이”기복(祈福)신앙과 축복(祝福)신앙의 차이”입니다.
“기복”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만을 바라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복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축복신앙”은 “축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축복”하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축복신앙”입니다.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복을 단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축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과 “축복신앙”의 공통점은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 알고, 바라는 것은 같지만,
다른 점은 “기복신앙”은 이기적인 신앙의 범주에 머무르는 신앙이고, “축복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며 받은 복을 흘려보내는 이타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어지는 그 시작은 우리가 “기복신앙”을 넘어서 “축복신앙”을 가지고 살아갈때 변화되는 것입니다.
뉴송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가 “축복신앙”을 가지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게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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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다양한 버전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국어 성경이 필요한 것처럼
각 나라의 언어로 성경은 번역되어야 하고, 번역되어 있고, 또한 앞으로 번역되어져야 할 언어들이 남아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약 39권의 버전으로 번역된 번역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Young’s Literal Translation (YLT) 라는 버전이 있는데, 이 영어성경 버전은 1898년도에 출간된 성경입니다.
성경원어에 기록된 시제와 단어의 용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번역을 한 성경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YLT 버전의 성경으로 13장 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The love is long-suffering, it is kind, the love doth not envy, the love doth not vaunt itself, is not puffed up”.
한글 성경에서 “사랑은 오래참고” 라는 표현을  이 영어 성경버전에서는 “
“라고 번역을 해 놓은 것입니다.
“사랑은 오랜 고통에 참을성 있는”이라는 말입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말이지만, 말씀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그 사랑으로 인해 참아 주시고, 기다려주심을 생각해볼때 “Love is long suffering”이라는 말씀에
저는 “아멘”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랜 고통’을 감내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이유는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존재 자체를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넘쳐나기를 바라고 더불어 그 사랑으로써 서로를 사랑하되
‘long suffering’을 감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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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한 것만 보라는 뜻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한 말만 들으라는 것이며,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며,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지나온 세월을 모두 기억하면 정신이 괴로울 테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다”
어떤 분의 글을 읽다가 알게 된 구절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런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몸의 변화에 대해서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모습과 다른 변화를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노인에 대한 글이 피부에 깊이 와닿지는 않지만, 공자가 ‘논어’ 말했던 것처럼 그 나이에 맞는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또 한번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가지 제한된 몸과 마음의 한계를 경험하였습니다.
지금이 인생의 계절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잘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제가 아무리 계획을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계획과 소망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때를 따라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지 않고 꼭 붙들고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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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생각할 나이,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 문장은 얼마전에 읽었던 기사의 첫줄 제목이었습니다.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 총괄 임원(전무)이던 정김경숙(53)이라는 분이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구글은 대기업입니다.  외국계 기업의 전무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지만,
안주하지 않고 구글 본사로 직장을 옮기고 새롭게 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자료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입사하고 싶은 외국계 기업의 NO.1이 ‘구글 코리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의 결정은 누가보아도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사화 되었을 것입니다.
이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까지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결정입니다. 
저는 그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다른 내용보다 더 제 마음에 큰 도전이 되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질렀다. 믿는 건 체력이었다. 체력이 몸과 마음의 코어근육에 가장 중요하다고 정김경숙 디렉터는 생각한다.
체력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체력에서 친절함이 나오고, 체력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사실은 30년간의 직장 생활 끝에 그가 깨우친 바다.
체력의 비결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3040 목회자 컨퍼런스를 통해서도 같은 내용으로 도전을 받았었습니다.
선배들을 통해서 “체력이 영력”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가 더욱 피부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들과 함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운동을 하기로 시작한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한 뉴송공동체 가족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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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계(逆設計)’는 론 프리드먼이 쓴 책 이름(원제:Decoding Greatness)입니다.
‘역설계’의 사전적인 의미는 “설계 원본 자료가 없거나 부족할 경우, 현품에 대하여 정밀 측정과 이화학 시험을 실시하여 치수와 재질 따위를 파악하여 기술 자료 묶음을 생성하는 일” 입니다. 
쉬운 말로 해서 기존의 것을 뜯어보고, 원리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몰랐던 내용을 한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 IT 업계의 거장을 뽑으라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라는 컴퓨터의 운영체계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이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록스’라는 회사에서 개인용 컴퓨터 ‘알토’라는 것을 개발했었는데,
이 두 사람은 이 컴퓨터를 보고 ‘역설계’를 해서 빌게이츠는 ‘윈도우’라는 컴퓨터 운영체계를 완성시켰고,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원래 특별한 천재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을 알고 보니 이들의 창조성은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에서 “역설계”를 통해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고, 또한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나라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놀라운 기적과 하늘의 복을 받게 된 사람과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던 일들에 대해서 ‘역설계’를 해보게 되면
그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남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 3박 4일간의 ‘3040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마치고 왔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저 개인적으로 ‘역설계’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지나온 길을 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삶을 점검하고, 다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우는 일은 참 소중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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