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벗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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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에 해당하는 딱딱한 껍질이 있는 생물을 가르켜 “갑각류”라고 말합니다. 갑각류에 해당하는 생물은 게, 새우, 가재입니다.
절지동물은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탈피”입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딱딱한 껍질을 벗는 과정입니다. 껍질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피부를 딱딱한 껍질로 변화된 것인데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껍질을 벗어야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것은 성장을 위해서 탈피를 하는 순간이 절지동물에게는 가장 약해지는 순간이 된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탈피를 하지 못하는 절지동물은 죽게 됩니다. 단순히 성장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껍질이 나중에는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된다는 것은
성장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때에 큰 교훈을 줍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아주 역설적이지만, 내가 가장 강해지는 때는 주님 앞에 내가 가장 겸손하게 낮아질때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앞에 더욱 자라나기 위해서 이전에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과감히 벗어내야할 껍질과 같은 것이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것을 붙들 수 있습니다.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가득해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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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이 서울에 근무하다가 일산 공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창고는 큰데 근무하기는 한량해서, 썰렁한 분위기도 바꿀 겸 오리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파고 물통을 묻고, 물을 부어서 30센티 정도되는 오리 사육장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 농장에 가서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사서 물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와서 보니 오리가 물통 속에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오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짐승에게 물린 흔적은 없었습니다.
물위에 떠서 살아가는 수영이 전문인 ‘오리’가 그 얕은 물에 빠져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은 오리 농장에 가서 주인한테 물었습니다. 여기서 사온 오리가 왜 하루도 안되어서 죽었냐고 따진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오리 농장 주인은 그것도 몰랐느냐고 하면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 오리는 농장에서 부화하고 키운 오리이기 때문에, 수영을 해 본 적이 없고, 어릴 때부터 물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서 물에 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경규 목사님이 지난 수요일 페이스북에 올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오리’라면 당연히 물 위에 떠서 헤엄치며 사는 것이 당연한 모습일텐데
‘온실 속의 화초’처럼 농장을 벗어난 ‘오리’는 ‘오리’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나가 살때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자리는 교회가 아니라 바로 세상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모든 자리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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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습관적으로 고백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도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고, 삶에서 어떤 일을 만날때마다 은혜로 덮어주시길 기도합니다.
말씀묵상학교에서 함께 나누었던것처럼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전에 꼭 해야하는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기도할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될때에
늘 언제나 은혜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기대한 은혜가 아니라 불편함이나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고,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안의 그릇된 동기를 보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럴 때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알기는 아는데 그렇게 말씀대로 행하지 못함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합니다.
혹은 여전히 내 자존심과 내 고집을 내려놓지 못해서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이 어떤 감정이고, 어떤 마음이 들든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씀 앞에 머물러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지혜의 말씀으로, 때로는 위로의 말씀으로, 때로는 책망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소중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말씀을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뉴송교회 모든 가족들이 날마다 말씀앞에 나아가 하나님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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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21, 38 이 세가지 숫자는 무엇일까요?
목양칼럼을 쓰는 지금까지 제가 뉴송교회에 부임해서 설교를 한 횟수입니다.
103번의 새벽예배 설교와 21번의 주일설교 그리고 38번 이상의 특별예배(심방 등 기타모임)의 횟수입니다.
뉴송교회에 부임한지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전하였던 말씀의 횟수가 벌써 이렇게 많이 되었습니다.
특별예배를 제외하고 124번의 예배를 함께 드리며 말씀을 나누었는데, 지금 여러분에게 기억하고 말씀을 살아내고 있는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요?
말씀묵상학교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공동체안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우리 각개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묵상학교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이있는 경건의 훈련이 삶속에 시작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다 살 수 없지만, 우리는 예배를 드리며 계속해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들었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안다고 해서 기억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기억한다고 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내기를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말씀을 많이 전할수록, 그리고 말씀을 많이 듣고 알게 될 수록
우리는 사실 마음에 더욱 부담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듣고 알게 된 이상 우리에게는 말씀의 실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자연스럽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길 원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뉴송공동체 안에서 전하는 말씀이 많아질수록, 듣고 알게 된 말씀이 많아질수록 우리 모두의 삶에 말씀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우리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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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될때 우리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랑할때 생기는 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즐거워 하는지, 무엇을 싫어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을 주거나,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향하여 이런 관심과 사랑으로 변함없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할 마음은 바로 사랑이고 관심입니다.
학창시절 다니던 독서실을 생각해 봅니다. 독서실은 각각의 자리가 칸막이로 막혀있습니다.
자기 책을 가져와서 자기가 혼자 공부하다가 집에 가는 겁니다. 아무리 독서실이 커도 상관없습니다.
같이 시간과 같은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지만 전혀 교류는 없습니다.
자기가 가져온 것을 자기가 하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각자 자기 할 일만 합니다.
교회는 독서실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두가 함께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는 서로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은 오래 기다려 왔던 현장대면예배를 다시 드리는 날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축복하고 관심 가지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는 뉴송 공동체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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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양약고구(良藥苦口)”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로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자신에게 이롭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또한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같은 이야기, 내 기준과 수준에 맞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주고 받다보면 우리는 서로 뭔가 잘 통한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서로 주고 받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사고나 생각들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고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의견이나 이야기들을 부담스러워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들어야 할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들어야 할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부담스러운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고쳐야 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것으로 마음에 부담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대부분 성경공부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가 먼저 들어야 할 이야기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는가 듣지 못했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이야기들을 들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목적에 부합한 것입니다.
잠언 12장 1절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언 12장 15절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언의 말씀을 보면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즐겨하기보다는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고 변화되어지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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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말은 멀리까지 퍼져 나가므로 말은 언제나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LA에 와서 느끼는 여러가지 일 중에서 한 가지는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 이곳이지만,
이곳에서도 다른 지역과 별반 다름없이 좁은 관계성 속에서 한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는 사람 한 명만 이야기하면 거의 대부분 연결이 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교제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하나님이 각 사람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시간이 참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면
직접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참 불편해집니다.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과는 깊이 있게 삶을 나누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웃긴말로 “너만 알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이야기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말이 있습니다.
말(言)이 말(馬)이 되어서 얼마나 빨리 전달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누구에겐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격려하고 위로하며
무엇보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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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구체적으로 2가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을 믿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분명히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관념이나 상상속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의 실제에서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이 됩니다.
오랜기간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을 단순히 ‘동의차원’으로만 생각했다면 그의 삶에는 특별한 믿음의 열매를 경험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신념과 생각, 동의를 넘어서서 삶으로 살아낼때 믿음의 열매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순종으로 드러나게 될때 그 믿음의 가치와 능력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에 “순종할 수 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가요 아니면 우리 스스로만 만족하는 믿음인가요?
순종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며, 날마다 삶을 통해 열매를 맺어가는 뉴송공동체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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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8)
저는 이 구절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납니다. 왜냐하면 전에 저의 설교를 번역해주던 청년회의 한 자매가 있었는데
이 구절을 설교중에 인용하였을때 “갈 바를” “Gal-Ba”로 번역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을 잘 알지 못했었고, 한글의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구절을 보면 설교를 번역했었던 그 청년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웃음만 나오는 구절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지 목적지가 어디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익숙했었던 모든 것에서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말씀인데
막상 순종을 하려고 해도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 갈 바를 알려주시지 않고 “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삶의 목적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아브라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큰 일을 이루어내는 것보다는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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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사 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팬데믹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예배와 교육에 대한 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교역자들(목회자와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고생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도움을 얻을 자료들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의 예배와 교육을 위해서 준비하였습니다.
교회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교회에서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자라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속에서 살아가면서 세상을 마음에 품고 살지만, 세상을 따르지는 않으며,
세상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되, 세상에 물들지는 않으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을 섬기지만, 세상에 끌려 다니지는 않으며
세상을 향하여 인내하지만, 세상에 힘에 굴복하여 넘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교역자들은 이 일에 부르심을 받아 섬기는 분들입니다.
다음세대를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사명을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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